갈라파고스는 단일한 여행지가 아니다. 에콰도르 본토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 군도는 20개 이상의 섬과 수많은 암초, 바위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계획하려고 하면 한 가지 큰 고민에 부딪힌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섬이 나와 잘 맞을까. 갈라파고스의 각 섬은 지형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여행자마다 가장 좋다고 느끼는 섬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섬들 중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타크루즈, 이사벨라, 산크리스토발을 중심으로 각 섬의 특징과 여행 팁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나에게 맞는 갈라파고스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산타크루즈 섬 – 갈라파고스의 중심지
산타크루즈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섬이다. 중심 도시인 푸에르토 아요라에는 숙소, 식당, 상점, 여행사 등이 몰려 있어 여행하기에 가장 편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첫 갈라파고스 방문지로 선택하기에 부담이 적은 섬이다. 처음 갈라파고스를 방문했을 때 나 역시 산타크루즈를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 덕분에 다양한 섬 투어를 연결하기도 좋았고, 필요한 물품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산타크루즈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있다. 대표적으로 찰스 다윈 연구소와 갈라파고스 거북 보호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멸종 위기에 놓인 갈라파고스 자이언트 거북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거북이가 천천히 풀을 뜯으며 걸어가는 모습은 참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오래 살아온 존재를 앞에 두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산타크루즈에는 엘 차토 보호구역, 로스 그리에타스, 토르투가 베이 같은 아름다운 자연 명소도 많다. 토르투가 베이는 나의 개인적인 추천 장소다. 백사장과 투명한 바다, 그리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펠리컨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해변은 걸어서 30분 정도 가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길게 뻗은 해안선과 붉은 선인장 숲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을 준다. 여행 팁으로는, 산타크루즈에서 현지 투어를 예약하면 주변 섬으로의 당일치기 투어가 편리하다는 점이다. 바르톨로메 섬이나 노스 세이무어 같은 무인도는 별도의 투어가 필요하며, 산타크루즈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갈라파고스를 효율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산타크루즈를 중심 거점으로 잡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사벨라 섬 – 야생 그 자체를 느끼는 곳
이사벨라 섬은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늦게 개발되었고,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사벨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조용함’이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오토바이 소리 대신 파도 소리가 들리고, 도심의 복잡함 대신 너른 하늘과 검은 화산암이 시야를 채운다. 이사벨라는 자연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여기서의 체험은 조금 더 ‘모험’에 가깝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로스 투넬레스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천연 터널과 아치 형태의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사이로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바다거북, 해마, 가오리, 상어까지 다양한 해양 생물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바다 속을 헤엄치던 해마를 처음 봤다. 마치 꿈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사벨라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시에라 네그라 화산 트레킹이다. 1,200미터 이상 고도를 올라가야 하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칼데라의 웅장함은 어떤 사진으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는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발걸음과 바람 소리만 존재한다. 자연과 깊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다. 이사벨라에서는 생활 편의 시설이 많지 않다. ATM도 드물고, 신용카드보다 현금이 더 자주 필요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여행을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사벨라는 갈라파고스의 ‘야생’을 경험하고 싶은 이에게 완벽한 장소다. 문명에서 잠시 벗어나 진짜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면 이사벨라를 추천한다.
산크리스토발 섬 –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담다
산크리스토발 섬은 갈라파고스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갈라파고스 지방정부가 위치한 행정 중심지다. 다른 섬들에 비해 도시적인 요소와 자연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여행자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갈라파고스 여행을 산크리스토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다사자다. 도시 중심 해변인 마놀라 해변이나 라 로베리아에서는 바다사자 가족들이 거리를 누비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해변가 벤치에서 누워 자는 녀석도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나란히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갈라파고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산크리스토발은 해양 스포츠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히 키커 락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암석 지형은 다이버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해양 이구아나, 상어, 가오리 등을 볼 수 있으며, 수중 시야도 뛰어나 다이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적합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첫 다이빙을 경험했는데, 처음엔 긴장됐지만 바닷속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금세 몰입하게 되었다. 물속에서 상어와 눈을 마주친 경험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산크리스토발에는 작지만 개성 있는 박물관과 카페, 기념품 가게도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며 도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숙소도 있어 장기 체류에도 적합하다. 여행 팁으로는 섬 남쪽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도보 트레일이 있다. 이 길은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아름다운 산책로로, 새벽이나 해질 무렵에 걷기 좋다. 물결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진다.
갈라파고스는 섬 하나만 다녀와도 충분히 특별하지만, 각 섬마다 매력이 달라 한 곳에만 머무르기엔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산타크루즈의 편리함과 중심성, 이사벨라의 야생적인 분위기, 산크리스토발의 도심과 자연의 균형. 각각의 섬이 지닌 개성은 여행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에게는 도시적인 편의시설이 중요한 요소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거친 자연 속에서의 탐험이 더 큰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갈라파고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먼저 떠올려 보는 것이 좋다. 내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에 따라 최적의 섬은 달라질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이곳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갈라파고스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된다. 내 마음에 가장 닿는 섬을 찾는 그 여정이 바로 갈라파고스 여행의 시작이다.